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야 소피아 (문단 편집) ==== 박물관으로 전환 ==== [[파일:Kemal_ayasofya_sign.png]] ||<-2> (중략) 수리 및 유지 비용 또한 교육부에서 담당하는 형태로서 아야 소피아 모스크를 박물관으로의 전환이 승인 및 허가된 바이다. ------------ [[1934년]] [[11월 24일]],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 2009년에 해당 문서의 사본을 공증받았기 때문에 2009년 10월 2일자 공증인이 찍혀있다.] || 오스만 왕정을 폐지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한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국교를 없애고 세속주의 정책을 취하는 과정에서 아야 소피아 모스크는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잠시 봉쇄되었다. 1934년 11월 24일 내각의 결정에 따라 1935년 2월 1일 폐쇄되었던 아야 소피아 모스크는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무슬림만 출입할 수 있다는 제한을 폐지했으며, 더 나아가 어떠한 종교행위도 금지했다. 박물관 개관식 날 아타튀르크는 신발을 벗지 않고 아야 소피아로 들어가 자신의 세속주의 정책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원래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https://www.360tr.com/34_istanbul/ayasofya/english/|아야 소피아 박물관 3D 체험관]] [[미국]] 및 유럽 고고학자들이 [[오스만 제국]]의 정복 당시 덧칠했던 회칠을 제거하여 성화가 드러나게 하는 것도 허락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회칠 위에 그려진 [[쿠란]]의 내용과 이슬람의 온갖 문양이 훼손된다는 반발에 1931년 회칠 제거를 금지한다. 아야 소피아 안에 꾸며져있던 이슬람식 장식과 타일들도 이미 500년 가까이 묵은 명백한 '''문화재'''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당시 X선으로 아야 소피아 전체를 스캔했을 때 타일과 회벽으로 장식된 부분은 성화나 모자이크의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즉 '''타일과 회벽을 치워봤자 안에는 별 거 없다'''는 소리. 아야 소피아는 초기 비잔틴 건축이기 때문에 현재 정교회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이콘]]으로 가득찬 성당과는 거리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